독기학설 김용옥 지음/통나무 |
평소 혜강 최한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대표작인 기학이나 신기통, 추측록 등을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읽어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독기학설이라는 책에 대해서 말을 들었다. 기학이라는 책에 대한 독서감상문이라는 김용옥씨의 주장이었는데. 읽어보고 느낀 점은 혜강을 알기 위해서 입문하려는 나같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혹은 혜강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말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은 원래 단행본으로 발간하려는 글이 아니었고 어떤 학술지에 실을 학술논문으로 작성하였다고 한다. 그 학술지에서 이 글의 파괴력(학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리차드 도킨스의 [과학혁명의구조]로 인해 느꼈을 파괴력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다) 때문에 게재를 거부 당했다고 한다.
결국, 단행본으로 발간을 결심했고 내가 읽은 책은 1999년에 출시된 책에 몇가지 수정을 한 2판이다.
학술논문으로 작성되었던 글인 만큼 생각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아니다. 일단 의견을 뒷받침 하기위한 각주들이 꽤나 많은데, 각 각주들은 설명하는 주석도 있지만 대부분 참고문헌에 대한 언급이기 때문에 각 참고문헌들에 대해서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참고문헌의 내용을 유추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고 평소 한자를 읽을 기회가 없어서 거의 잊고 있던 한자들도 꽤나 나오기 때문에(물론 한글로 독음한 것도 있으나 아닌 경우도 많다) 독음 자체를 하지 못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으며 한글로 나오는 단어라도 뜻을 몰라 사전을 뒤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평소에 어휘력의 부족을 느끼지 못했는데 김용욕씨의 어휘의 범위가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렵게 말을 하기도 한다 ^^;).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서 서술되는데 첫번째 부분에서는 조선조의 철학의 흐름에서 우리가 실학이라고 알고 있는 부분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 조선근대사의 많은 생각들이 실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존재했었는지를 따져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리차드 도킨스의 [과학혁명의구조]를 읽고 느꼈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리차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보는 변증법적인 과학 발전과정은 실제의 과학사에서 찾아보기 힘들며 오히려 각 시대에 존재하였던 수많은 생각들 중 하나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생각들을 대체하는 과정(주로 나이 먹어 죽음으로서)에서 패러다임 쉬프트(패러다임의 교체)가 일어난다고 이야기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에서 그런 과정을 기술할 때, 변증법적으로 한 이론의 취약점이 발견되고 그 이론을 보충한 반이 다시 원래 이론인 정과 합쳐져서 그 합이 다시 주류를 이루는 이론인 정이 된다는 알려져 있는데. 이런 형식을 사용하는 것은 실제로 실제적인 과정을 잘못 해석하였거나 후세의 배움의 용이성을 위함이라는 것이다(이 의견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실학의 실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도올은 조선말에 살았던 혜강 최한기라는 사람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혜강는 주자학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 계통을 이루던 대부분의 조선조 학자들과는 괘를 달리 했다는 것이다. 과학사의 패러다임 쉬프트와 같은 사건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연구를 하였으며 그 연구는 그 시점에서의 위대함 때문에 현실에서 조명해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5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분량의 책이지만 그 안에는 진실을 보기위한 씨앗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올의 의견이 무조건 옮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리고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그의 의견에는 대부분 동감한다.
기학이 새롭게 나왔다고 한다(2004년에 개정판이 출시되었다). 내가 어떤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지 흥분이 된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 배움을 익히는 것처럼 즐거운 것이 또 있을까. 독기학설을 통해서 혜강 최한기의 생각에 접근 할 수 있는 발판을 쌓은 느낌이다. 멀게만 느껴져서 다가가기 힘들었던 벽에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다.
[인상깊은구절]
다산은 일생을 페리페리(주변)에서 살았다. 그렇지만 그의 모든 관심은 센타(중심)에 있었고 실제적으로 그의 행동은 센타에 영향을 주었다. 혜강은 일생을 센타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항상 센타를 초월한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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